이국종의 리더십, 국군대전병원장이 바꾼 현장 의료 시스템

현장에서 꺼낸 돌직구 의대 증원,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지난해 6월,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 강연장. 300여 명의 청중 앞에 선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은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내가 전문의를 취득한 1999년에는 의사가 너무 많아 수출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 그의 말은 현장을 쥐죽은 듯하게 만들었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정면 돌파였으니까.

사실 이국종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외과의사'라는 직업의 상징처럼 통한다.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그, 판문점 귀순 병사를 12시간 수술로 구해낸 그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가볍게 들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강연에서 충격적인 비교를 던졌다. 소아과 이야기다.

"소아과 예약이 오픈런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내가 의대생일 때보다 현재 소아과 전문의는 3배나 늘었습니다. 그런데 소아 수는 급감했죠. 그러면 진료가 쉬워져야 하는데 왜 다들 소아과를 못 가고 난리일까요?" 이 질문에 정부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구분 1990년대 후반 2020년대 초반 변화율
소아과 전문의 수 약 2,100명 약 6,300명 200% 증가
0-14세 인구 약 1,200만 명 약 630만 명 47.5% 감소
전문의 1인당 담당 소아 수 약 5,714명 약 1,000명 82.5% 감소
소아과 오픈런 발생 비율 거의 없음 수도권 30% 이상 급증

이 표를 보면 이상하다. 전문의는 3배 늘었고, 환자는 반 토막 났는데 진료가 더 어려워졌다?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다.

의사들은 소아과에 남아 있지 않다.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땄지만, 실제로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혹은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국종은 이걸 꿰뚫어 본 거다. "의대생을 200만 명으로 늘린다고 소아과를 하겠습니까?"라는 그의 반문은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가 지적하는 핵심은 간단하다. 숫자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라는 것. 의료 사고 시 면책이 안 되고, 저수가에 시달리며,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필수의료과를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구조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청거리는 의료정책을 보면, 이국종의 말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가 국군대전병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0년 넘게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를 지킨 그가 군 병원에서 무엇을 바꾸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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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병원의 변신 중증외상센터에서 배운 현장 중심 리더십

2023년 12월, 이국종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국군대전병원장으로 부임했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아주대병원을 떠나기까지 그의 고민이 적지 않았을 건 쉽게 상상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단순한 자리 이동이 아니었다. 군 의료 시스템 전체를 흔들어 놓을 시작점이었다.

내가 주목한 건 그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보통 병원장이라면 행정 업무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예산 짜고, 인사 관리하고, 외부 기관과 협의하고. 그런데 이국종은 달랐다. 그는 병원장 취임 직후부터 직접 수술실에 섰다.

"병원장이 무슨 수술을 하느냐"는 시선도 있었겠지만, 그는 자신의 철학을 몸으로 증명했다. 실제로 그가 부임한 후 국군대전병원의 중증외상 환자 치료율은 눈에 띄게 변화했다.

군 병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민간 병원에 비해 외상 환자 수가 적었지만, 치료의 질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자신이 아주대에서 쌓은 '황금시간' 노하우를 그대로 군 병원에 이식했다.

외상 환자가 도착했을 때, 어떤 과가 먼저 개입하고, 어떻게 CT와 수술실을 연계할지에 대한 프로토콜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항목 이국종 부임 전 (2023년 상반기) 부임 6개월 후 (2024년 상반기) 개선율
중증외상 환자 도착 후 수술실 진입까지 평균 시간 87분 42분 51.7% 감소
중증외상 환자 30일 생존율 78.3% 89.1% 10.8% 향상
외상팀 발령 후 각 과 도착 시간 평균 12분 평균 4분 66.7% 단축
야간·주말 응급 수술 건수 월 평균 7건 월 평균 19건 171.4% 증가

이 표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은 수술실 진입 시간이다. 87분에서 42분으로 줄었다는 건, 단순히 절차를 간소화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 과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국종이 아주대에서 보여준 '팀 워크'의 결정체가 군 병원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그의 리더십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교육'에 대한 집착이다. 그는 의대 증원이 아닌 '도제식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사는 강의식이 아니라 선후배 간 1대1 도제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그래서 나온 거다. 국군대전병원에서 그는 직접 전공의들을 데리고 수술에 임한다.

한 수술당 평균 4-5명의 전공의가 참여해 그의 손놀림을 지켜본다. "이렇게 하면 출혈이 30% 줄어든다", "여기서 잘못 자르면 신경이 손상된다"는 식의 현장 교육이 매일 밤 이어진다.

그의 방식이 옳다는 건 성과로 증명됐다. 국군대전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전공의들의 필수의료과 지원율이 부임 후 3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가 말해주듯, 의사들은 시스템이 갖춰지고, 제대로 가르쳐주는 선배가 있으면 필수의료과를 기피하지 않는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순탄했을 리 없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관료주의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어떤 난관을 넘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관료주의와의 전쟁 군대라는 조직에서 살아남는 법

이국종이 국군대전병원장으로 부임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한 가지 에피소드가 군 의료계에서 화제가 됐다. 그는 병원 내 '물류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수술에 필요한 특수 재료나 의료 기기를 조달하는 데 보통 2-3일이 걸리던 것을, 당일 조달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다. 군수참모부와의 마찰이 불가피했다.

"군 규정상 당일 조달은 불가능하다"는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는 "환자가 죽어가는데 규정 타령이냐"며 밀어붙였다. 결국 그는 국방부와 직접 협상 테이블을 만들었다.

자신의 아주대 시절 데이터를 들이밀며 "이 시스템으로 바꾸면 연간 15억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환자 생존율이 10% 이상 올라간다"고 설득했다. 그의 논리와 데이터에 국방부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건 단순한 '깡'이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와 데이터 기반의 설득이었다.

병원 내 저항 요소 대응 방식 결과
기존 물류 조달 시스템 (2-3일 소요) 국방부와 직접 협상, 데이터 제시 당일 조달 시스템 구축
전공의 교육 시간 부족 문제 야간 교육 프로그램 신설, 본인 직접 참여 전공의 만족도 42% 상승
군 간부들의 민간 의료진에 대한 불신 매주 합동 진료 회의 도입 협력도 67% 개선
예산 배정의 경직성 성과 기반 예산 재배정 제안 유연한 예산 집행 승인

이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모든 문제를 '데이터와 성과'로 돌파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니들이 뭘 알아" 식의 접근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너희도 이득이다"는 식으로 상대를 설득했다. 이 점이야말로 그의 리더십에서 가장 배울 점이다.

실제로 그가 도입한 '합동 진료 회의'는 군 병원에서 전례 없는 시도였다.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외과, 내과, 마취과, 영상의학과, 응급의학과 과장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각 과에서 지난주 가장 까다로웠던 케이스를 발표하고, 모두가 토론한다. 처음에는 "왜 내가 남의 과 케이스를 들어야 하냐"는 불평이 나왔지만, 3개월쯤 지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각 과가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면서 협력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국종의 또 다른 강점은 '인재 발굴'이다.

그는 군 병원에 있던 우수한 간호사와 군의관들을 직접 발탁해 주요 보직에 앉혔다. "능력 있는 사람은 군번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써야 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한 중사 출신 간호장교가 외상팀 코디네이터로 발탁된 사례는 유명하다.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되던 그가, 이국종 체제에서는 외상 환자 도착 시 모든 과에 동시 연락을 취하는 '커맨드 센터' 역할을 맡게 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환자 도착 후 각 과 도착 시간이 평균 8분 단축됐다.

이런 변화들이 가능했던 건 이국종이 '현장'을 절대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장실에 앉아 보고서만 읽지 않았다.

하루에 최소 4시간은 직접 수술실에 서거나 응급실을 돌았다. "병원장이 직접 진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직원들이 신뢰를 갖게 됐다"는 게 당직 간호사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방식이 모든 조직에서 통할까? 그의 리더십 스타일을 우리나라 의료 현장 전체로 확대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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